저녁 무렵 아직 더운 기운이 몸에 와닿는 가운데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산책을 하며 녹색의 나무들을, 먼 구름이 고요히 명상에 잠겨있는 하늘을 바라보면 침침해져 가는 시력이 회복되고 탁 트인 허공을 보면 가슴과 머리가 시원해집니다. 욱체가 있기에 우리는 시공간에 제약되고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주 확 트인 넓은 공간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좀 걸어가며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손녀뻘 되는 중학 1,2학년생 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입에서 욕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한창 곱고 예쁜 때이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며 공부에 매진하고 고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해야 할 때인데 저렇게 입에서 욕을 하니, 참으로 경악스럽고 통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쌍욕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 세태가 어떻게 생겼을까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좀 풍요로워졌지만 다른 한편 우리의 삶이 저질스럽고, 저열하고, 천박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그저 쌍욕이 거침없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타락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은 존재의 집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가 어떤 집, 즉 어떤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면 우리가 사는 집이 더럽다는 말입니다. 다들 깨끗한 집에 살려고 하지 더러운 집에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를 읽고 사색해야 하고 좋은 종교서적을 읽고 지혜와 진리를 찾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고결하고 존엄하고 고상하고 품격 높고 우아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애를 써고 또 써야 합니다. 전에 소개해 드린 릴케의 시에 나온 구절처럼, 책을 읽고 오래 깨어 있고 긴 편지를 써야 합니다. 정신과 내면을 갈고 닦는 책을 읽어야 하고 씩, 씩 잠 오래 자지 말고 깨어 명상하고 마음으로 깨달은 좋은 것을 아는 지인들에게 길고 긴 편지로 써야 합니다. 편지를 통해서 나의 진정한 내면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진정한 마음을 전하려 글을 쓰는 것은 니체가 말한 "피로 쓰는 것"입니다. 아무런 거짓, 아무런 가식이 없이 자신의 정신, 자신의 마음을 틀어내놓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정 기도입니다.
아! 아!
진정한 영혼이 담겨진 글은 기도와 같습니다. 진정한 영혼, 진정한 사랑이 담긴 글은 우리 존재를 영원히 드높은 경지에로 들어 올려줄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