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조 시대 때 살았던 황진이에 대해 많이 들어왔고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기생의 딸로 태어나 그 역시 기생으로 여러 선비들과 염문도 뿌리고 그 당시의 여염 집 부녀와는 극적으로 다른 어떤 면에서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 옆집에 살던 떠꺼머리총각이 그녀를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어 그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그녀의 속옷을 상여 위에 얹어 주자 상여가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얼마나 가슴 태워 사랑했길래 상사병에 걸리기까지 할까요? 이 시대에도 상사병이 있을까요?
그녀는 이름 있는 기생으로 두어 명의 남성과 동거도 하고 다른 남정네들하고도 연애도 했지만 그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그녀의 신분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바칠 남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녀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스승으로 모실 남자를 만나려고 길을 떠나 처음 수십 년간 참선수행을 한 지족선사를 찾아가 그를 시험하기 위해 유혹을 하여 결국 그 선사가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황진이는 다시 유학자인 서경덕을 찾아가 그를 유혹하려 했으나 서경덕은 전혀 동하지 않고 그녀와 학문을 논하고 시를 교환했습니다. 그녀는 서경덕에게서 자신이 정신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남성상을 발견했고 그를 흠모하고 받들었습니다. 그녀는 서경덕의 사후 그가 다니던 전국의 여러 곳을 다니며 그의 흔적을 느껴보려고도 했습니다.
황진이는 기생으로 유교의 덕목중의 하나인 일부종사는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러 남성 편력을 거치면서 육체관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영적인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경덕에게서 그 사랑을 확인했고 영원한 사랑을 찾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우리 인간의 사랑도 그 영원성을 갈구하는데서 그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현 세대에 남녀간의 사랑을 육체적 관계로만 보려는 경향이 농후하게 많이 있지만 그런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육체는 영원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망의 끝은 허탈과 허망함과 죄책감으로 얼룩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끝없는 채워 질 수도 없는 욕망에 허덕여, 끝내는 나가 자빠지기 때문이죠.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성은 영혼의 사랑, 영혼의 일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일치와 사랑은 항상 기쁘고 항상 평화롭고 항상 사랑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것으로 이 지상의 어떤 슬픔과 고통도 다 이길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져 살아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의 에너지가 우주에 그대로 존속해 있기 때문이죠.
지상에서도, 저 천상에서도 영원히 살아있는,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지요.
그녀의 漢詩 한시를 김안서가 번역한 시 "꿈"을 읽어 봅시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따라 그 님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님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 양 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현실로는 불가능해 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님이 벌써 길을 떠나 버려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같은 시각에 떠나 노중에서, 즉 길 가운데서 만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같이 꾸고 같은 시각에 길을 떠나야 도중에서 만나는데 꿈꾸는 시각이 다르니 만나지 못해 한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애절합니다.
이 시에 김성태 선생님이 아름다운 선율을 입혀 작곡했습니다. 소프라노 송광선과 소프라노 김희정의 절창의 영상을 올립니다.
https://youtu.be/4f21WtXHTU8?si=RqaP-TpupNd1XtPY
https://youtu.be/89ahtlu9q5Q?si=sem5mEDA3lVpQv7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