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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릴케의 시. 가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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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주님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묵직한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며들 이게 하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 깨어 있을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뒹굴면, 안절부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올여름은 참 더운 계절이었습니다. 이제 9월 2일 달력으로 가을이 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하여 일상생활에 좀 더 힘을 내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꽉 찬 에너지가 엷어가면서 우리의 마음은 그래서 그런지 한편으론 쓸쓸해져 가겠죠. 여름이 외면으로 에너지가 분출하는 때였다면 가을은 우리 내면, 의식으로 좀 더 기울어지는 때가 되겠습니다.

이때 딱 맞는 시 한편 소개 드립니다.

독일의 대표적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가을 날"이라는 시입니다. 정말 단아하고 많은 것을 함축하며 상징하는 걸작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시여서 가을에는 많이 이야기되고 읊조리는 작품입니다.

세밀하게 의미를 분석적으로 보면,

1연은 여름의 풍성함을 말하고 있는데, "주여"라는 말은 꼭 기독교의 하느님만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의 위대함을 볼 때 저절로 외경심이 생겨 외치지 않습니까? 우리 조상님들은 천지 신령님! 하지 않았습니까? 그림자를 해 시계 위에 놓아 주시라고 하는 말은 주님의 그림자마저도 계속 시계 위에 머물러 있도록 해주십시오라는 의미로 볼 수 있고, 그래서 2연은 주남의 창조사업이 완성이 되도록 여름날을 더 연장해 주십시오라고 해석되고, 3연에서 시에서 핵심 되는 의미가 등장하는데, 이제 집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는 구절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집이 없으면 집을 지어야 하는데 왜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는 거지? 세계의 대도시마다 노숙자들이 흘러넘쳐 집이 필요한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돈 버는데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여기에서 집은 우리의 아집, 집착, 물질적 욕망을 상징합니다. 가을이 되어 모든 것이 익어 완성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우리 몸을 스치고, 더 가을이 깊어지면 싸늘한 바람이 불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지난 간 시절을 반추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해 명상하고, 그래서 때로는 술을 한잔하면서 생의 덧없음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있게 되어 고독을 즐기게 되고 잠을 안 자고 오래 깨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책을 읽는다는 말은 자신의 내면을 책을 읽으며 들여다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응시를 하면서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나 부모님에게 편지를 그것도 길고 긴 편지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편지를 서로 교환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것 또한 너무나 좋은 것이 사라져가서 섭섭합니다. 정다운 사람끼리 편지를 쓰고 받고 하면 얼마나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자기 손으로 정성 드레 특히 연애편지 쓸 때 혹시 철자라도 틀릴까 봐 국어사전 다시 찾아보고 하며 정성스레 쓰서 부치는 편지, 참으로 정겹지 않습니까? 편리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쓸쓸히 낙엽이 날리는 길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침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단순히 얄팍한 가을날에 느끼는 감상적인 글이 아니라 삶과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으로 넘치는 명작입니다. 이런 시를 읽으면 우리의 마음은 사과가 빨갛게 둥글게 무르익었듯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큰 행복감에 넘치게 됩니다.

이 시와 어울리는 쇼팽의 왈츠 작품 하나를 첨부합니다.

 

https://youtu.be/qHeJlSWSnUI?si=KEZc-95ILmt2kz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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