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늘 폭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타인에 대해, 다른 생명체에 대해 해를 가하려는 나쁜 마음이 도사려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끓어서 힘이 넘쳐나고 괜히 그 힘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나쁜 유혹에 빠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딴 사람에게 물리적 힘을 가해 피해를 주고 심하면 피해자에게 평생의 심적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특히 현시대에 학교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슬픈 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군대, 회사, 공직에서도 육체적 또는 심리적 폭력이 일어나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피살당하는 사례도 발생합니다.
왜 이런 나쁜 마음과 나쁜 사건이 생길까요?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때문일까요?
우리가 육체를 가진 존재로 왜 다른 육체를 가진 존재에게 해를 끼치려 할까요?
구경 중에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싱시합이나 격투기 시합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합니다. 막상 그 경기를 하는 선수는 돈을 많이 받고 그런 폭력적 힘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이기려 피 터지게 싸움니다. 물론 정해진 규칙이 있어서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는 걸 막지만, 가끔은 사망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림들은 이런 시합을 관전함으로써 가슴속에 있는 폭력 사용의 욕망을 대리 만족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이런 유형적 폭력외에 무형적 폭력도 있습니다. 무형적 폭력이란 폭언, 즉 말로 하는 폭력과, 은근히 암시적으로 눈짓이나 협박적인 거동으로 하는 폭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갚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폭력은 참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고 비양심적인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 몸을 보면 너무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손톱밑에 자그마한 가시를 찔러 넣어도 굉장히 아프지 않습니까? 누가 몽둥이로 나를 패면 너무너무 아프지 않습니까? 우리 몸은 너무나 연약하고 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고통에도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그렇게 아프고 쓰린데 어떻게 똑같은 생명체에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 생명체에 대해 경외하고 존중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훈련이 단지 육체적 단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 분노가 채워 올라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저 생명체도 나와 같은 생명체다라고 그 순간에 마음을 되돌리고 자애하는 마음을 내는 훈련을 늘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이 不二 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생명체가 둘이 아니다. 즉 모든 생명체가 하나이다라는 말입니다. 너와 나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가 합일체이다, 하나이다라는 말입니다. 하나인데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이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세계에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체적으로 보면 개인 간에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크게 보면 나라들끼리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깊은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끊임없는 보복전쟁, 참으로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어린 아기들이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 모습을 티비이에서 보면,,,,,, 아! 아! 참으로 인간이 사는 것이 왜 이럴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년 자살율이 OECD 나라 중에서 가장 높다고 나옵니다. 특히 20~ 30대에서 자살률이 높습니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생명체에 대한 폭력행위, 살해행위입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존귀한 생명체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까? 탄생시킬 수 없습니다.
한 생명체에는 어마어마한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적과 신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것은 정말 정말 엄청난 기적이고 신비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나면 고치려고 기적을 바라기도 하지만 이 또한 무지와 무식의 소치입니다.
현재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늘 조심하고 건전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생체의 법칙에 맞는 생활을 하면 육체의 질병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선한 마음을 유지하고 생명체에 대해 무한한 자애심과 동정심을 내도록 늘 훈련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육체의 근육을 키우듯이 자애심과 사랑의 근육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경건한 독서와 기도 그리고 고귀한 예술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또 깊이깊이 삶과 세계와 우주의 법칙을 연구하는 공부와 성찰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인간의 자애심과 사랑의 빛은 이 세상의 어두움을 없애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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